독(毒, POISON) 2회 개인전
* 미술과 담론 / 글. 이선영(2003. 1. 4)
* 김태은 전 (2003, 1/1--1/7, 갤러리 창)
; 회화를 전공했지만 동시대 대중음악의 뮤직비디오나 영화 등 대중문화의 영역까지 손을 대고 있는 작가의 이력에 비한다면, 전시장은 예상외로 차분하다. 통상적으로 대중주의를 표방하는 전시들을 보면, 온갖 것들을 다 뒤섞고 짬뽕하여 정신 산란한 분위기 일색인데, 그의 전시장에는 영상기기와 스피커가 전시장 중간쯤에 한 줄로 배열된 것이 전부이다. 그 맞은 편에 영상이 투사되고 있지만, 언뜻 보면 영상같지가 않고 좀더 밝은 조명을 받고 있는 전시장 벽같다.
그가 고안한 '동형수렴장치'를 통해 전시장 벽면은 순차적으로 복제, 투사되면서 벽 저 너머로 확대된다. 투사되는 벽면은 아득한 소실점을 향하여 점점 멀어지면서 관객을 착시적인 공간 속에 빠져들게 한다. 그것은 또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도 조응하는 것으로서, 서서히 빨라지기 시작하는 리듬과 더불어 공간의 복제 속도도 가속도가 붙는듯 하다. 마주보는 공간의 벽면이 소실점과 일치될 정도로까지 멀어졌을 때, 관객 앞에 펼쳐진 착시적 공간의 크기는 최대가 된다. 소실점과 일치되는 순간 폭발하는 듯 한 섬광과 함께 모든 것이 사라진다. 어느 임계점에 이르러 벽은 빛의 속도로 멀어지는 듯하다.
다시 화면에는 의자가 나타나며, 그 의자 위에 앉아있는 사람이 보인다. 그는 저 멀리 달아난 공간을 쫒아가지 못한채 남아있던 어리둥절한 관객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작품은 마치 미니멀 음악이나 주술적인 주문처럼 반복에 의한 최면효과를 자아내면서 관객의 시공간 감각을 교란시킨다. 과거의 싸이키델릭 문화는 요란한 장식을 통해 정신의 확대를 도모했지만, 그의 작품은 보다 냉정하고 기하학적이다. 하위문화의 달콤한 환타지는 그의 작품에 '독'(전시부제)이 되어 중독만을 남겼을지 모른다. 벽 저편으로 사라지는 또 다른 벽은 그 앞의 공간을 내놓는데, 그것은 상동성homology을 띄면서 복제된다. 작가는 같은 구조를 다른 층위에서 반복시킨다. 이 비슷한 구조들로 인해 혼란한 지각의 와중에도 작품에 일관성이 부여된다. 형태들의 동족관계, 즉 동일구조에 의해 지배된다. 유사한 형태들은 가시적인 패턴 사이에 구조적인 일치성을 부여한다. 그러한 구조적 일치성은 동형성isomorphism을 띈다. 그것은 대중매체가 지배하는 현대적 지각방식에 걸맞는 모형들이기도 하다. 작가는 전시장 벽이라는 실체를 구조적인 모형들로 환원시키고, 그 구조적인 동족관계들을 하나의 문화적인 인식소로 부각시킨다. 오늘날의 전달매체는 실체가 아닌, 그같은 모형, 사건, 영상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벽은 가속도를 받으면서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듯 보이는데, 그것은 전진 방향 반대로 의자를 돌려 앉아 보는 경치와도 유사하다.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관객이 뒤로 잡아 당겨지거나 관객 앞의 공간이 밀려나는 듯한 착각을 준다. 복제에 의한 실재의 병렬적인 재배치는 모든 위계적인 구성원칙을 파기함으로서, 정신적인 차원에서 가늠할 수 있는 시공간 감각을 상실하게 한다. 그것은 마치 무의식의 풍경처럼, 정합적인 시공간상의 의미사슬의 분열을 통해 즉각적인 현재를 제시한다.
아득히 멀어지면서 빛으로 폭발하는 이미지는 그 무한 소실점에 종교적 의미--'실재하는 것과 가능한 것은 영원 속에서는 다른 것이 아니다'(부르노)--까지 부여할 수 있게 한다. 김태은은 경험적 실재에 기초한 모델을 통해 관객에게 또 다른 경험을 창출하게 한다. 그의 작품은 정적인 조화가 아니라, 역동적인 연속성을 통해 현실의 한계를 넘고자 한다. 그것은 연속성과 불연속성, 통시성과 공시성을 모두 포함하고 상호보완 되는 여러 겹의 비전을 필요로 한다.
* 설치전경 / 쥬피터 조명2, 프로젝터, 오디오 장치 / 갤러리 창. 2003년